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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반대 시위에 관한 두 신문의 사설
[조선일보] 2006년 11월 22일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22일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위대 7만4000명이 13개 市시에서 한꺼번에 시위를 벌이고 7곳의 시청과 도청을 습격했다. 대전에선 충남도청에 횃불을 던져 울타리를 불태우고 담 100m를 무너뜨렸다. 전농, 범민련, 전교조, 한총련 등 300개 단체가 結成결성한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농민을 선동하고, 여기에 민노총이 적극 가세했다. 이른바 ‘기획시위’였다. 범국본은 29일과 12월 6일 또다시 전국에서 동시 시위를 할 계획이다.
이날 밤 전국 곳곳에선 관공서 울타리에서 불길이 치솟고 시위대가 휘두르는 횃불로 관공서 앞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이걸 두고 無政府무정부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있는데도 무정부 상황이 돼버렸다는 데 있다. 정부가 눈만 껌벅껌벅하고 사실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정권 출범 이래 공무원을 몇만명 늘리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밝힌다고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수십개의 대통령 자문위원회를 만들고, 겁도 없이 국가 빚을 늘릴 대로 늘리고, 막말할 수 있는 自主자주를 위해 수십조원의 국민 세금으로 국방력 증강 계획을 세웠던 정권이 지금 이 모양이다.
전국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번 시위에 경찰이 2만5000명이나 출동해 현장에서 붙잡은 폭력시위자가 고작 27명뿐이다. 경찰로서도 작년 농민시위 때 폭력시위를 진압하다 난 사고 때문에 경찰 總帥총수가 물러나는 모습을 본 터라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현행 集示法집시법은 집단적인 폭력 우려가 명백한 시위, 해뜨기 전이나 해진 후 시위,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시위는 금지할 수 있고 이를 어기는 시위는 6개월에서 2년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게 돼 있다. 이 법 하나만 제대로 적용해도 한국형 저질 폭력시위는 당장 잠재울 수 있다. 그런데도 하루 평균 7000명씩 크고 작은 시위를 벌이는 나라에서 집시법으로 實刑실형을 선고한 사례는 얼마 전 평택 대추리사건 주동자 한 명뿐이다.
정부가 이런 멀쩡한 법은 놔두고 무슨 ‘평화시위 사회 大協約대협약’을 추진한다느니 시위대와 ‘평화시위 양해각서’를 체결한다느니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폭력시위대들이 국민을 비웃으며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것이다.
[한겨레] 2006년 11월 23일 폭력은 시위의 호소력을 떨어뜨린다
그제 전국에서 벌어진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에서 폭력 사태가 나타났다. 서울에서는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됐으나, 대전과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선 시위대와 경찰이 심하게 충돌했다. 이 와중에 충남도청 울타리가 불타기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이런 격렬한 시위는 농민과 노동자들의 분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특히 농민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두고 느끼는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 계속 농업을 희생하더니 자유무역협정을 계기로 농업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거냐는 농민들의 불안감은, ‘농민의 자식’들인 대다수 도시인들도 공감하는 바이다. 오죽했으면 도지사들에게 협상 중단 건의를 요구하려고 도청으로 몰려갔겠는가.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의 심정도 절박함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뜻을 확실히 표시하기 위해 꼭 폭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시위대 쪽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과 경찰의 강경 진압이라는 ‘더 큰 폭력’은 놔두고 시위대의 ‘사소한 대항 폭력’만 문제삼느냐고 항변할 게 분명하다. 이런 항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폭력에 대한 사회적 반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엔 시위대의 과격 행동을 이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민주주의가 꽤 진전된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시위에 따른 교통체증까지는 감수할 수 있지만 폭력은 곤란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 때문에 시위에 폭력이 개입되면 시위대의 주장이 호소력 있게 대중들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시위의 본래 목적을 생각해서라도 폭력만큼은 피해야 한다.
시위대의 폭력을 자극하는 일 또한 경계해야 한다. 경찰은 자식같은 전·의경들에게 폭언을 듣거나 폭행을 당할 때 농민들이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야 한다. 또 시위대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방해하면 시위는 더욱 격렬해지기 마련이라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이택순 경찰청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의 집회 금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도 옳지 않다. 위법 가능성을 내세워 집회를 미리 막겠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법 위반 사항이 있다면 처벌하면 될 일이다. 폭력 시위 엄단만을 외치는 세력들 또한 자중해야 한다. 강경 대응은 폭력 시위를 줄이기보다 도리어 부추기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