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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신병동인가? 진중권
대한민국, 정신병동인가? 진중권
1. 언론의 사디즘
“경제도 어려운데 공무원까지 파업을?” 본색이야 늘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 상부 구조에서는 제법 개혁적인 척 하는 열린우리당도 하부 구조가 문제가 되면 한나라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인다. 정부는 탄압하고, 한나라당은 공조하고, 조중동은 응원하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이럴 때는 그 드높던 안티조선도 목소리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지금 공무원 노조를 향해 퍼부어대는 저 황당한 언론의 왜곡보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전공노는 싸늘한 국민 눈길도 못 느끼나?> (조선일보)
<전공노 지도부에 법의 엄정 보여줘야> (중앙일보)
<전공노 끝내 파업인가?> (동아일보)
<파업 공무원 엄단의지 귀추를 지켜본다> (문화일보)
<희생자 양산하며 혁명할 건가?> (국민일보)
<파업 전원 파면 약속 지켜야> (매일경제)
<법질서 확립할 마지막 기회다> (한국경제)
가관이다. 이 정도면 광란이다. 30년대 나치 집권하던 시절의 독일의 언론상황을 연상시킨다. 한 마디로 언론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공무원의 이해가 서로 엇갈리는 상황이다. 여기서 약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이해의 충돌에 관한 한 언론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저 사설들의 제목을 보라.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을 넘어서, 아예 공무원 노조에 합법적 폭력을 가하라고 대국민 선동을 하고 있다.
파업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자기들이 나서서 설치지 않아도 대통령 각하, 국무총리 각하, 장관 각하께서 단도리 하겠다고 벼르시는 중이다. 이거, 말리기는커녕 “조져라, 조져라” 응원을 하고 자빠졌다. 저 쓸 데 없는 공격성,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 공격성은 성적 에너지다. 저거, 성욕의 표현이다. 대한민국 사디스트 언론인들은 저 짓을 하면서, 헉헉, 성적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변태도 저런 변태들은 다시 없을 거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아주 개판이다. 지금 뭣들 하는 짓인가? 언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양자가 주장의 공정하게 제시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비판을 하려면 할 일이다. 도대체 공무원 노조에서 주장하는 것 중에서 뭐가 문제인지 차분히 지적하면 될 일이다. 반대를 하려면 할 일이다. 다만 언론에서는 비록 파업에는 반대해도, 민주시민이라면 마땅히 동료 시민들의 권리 표현에 톨레랑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얘기해야 한다. 국민들의 열화 같은 규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공권력을 향해서는 그 칼로 저 공무원들의 목을 치라고 성화를 부리는 언론의 태도는 한 마디로 완장 찬 나치 당원의 모습이다.
2. 정권의 정신분열
노무현 대통령은 언젠가 “악법을 깨기 위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고, 스스로 “그것은 파업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이 “원칙과 소신” 때문에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찍어주었을 것이다. 근데 정작 청와대에서 요즘 들려오는 소리는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우리 대통령 각하, “억지와 떼를 쓰는 노동계와 더 이상 타협은 없다”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라는 메시지를 보내셨단다. 그 노무현과 이 노무현은 같은 인물인가?
1988년에 지금 총리로 계신 이해찬씨는 당시 노무현 의원과 함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노동법을 일반법으로 제정하라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단다. 1988년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정작 1988년에는 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불가능해진 모양이다. 뉴스에서 본 이해찬 총리는 현상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참가자에게는 “징계와 처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 이해찬과 이 이해찬은 같은 사람인가?
행자부 장관은 “전교조처럼 복직될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아예 협박을 하고 있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따로 없다. 이렇게 감히 군사정권도 하지 못 했던 협박을 하는 게 참여정부의 현실이다.
유시민 의원의 비아냥을 들어 보자.
“누가 공무원 되라고 협박했나? 박봉인 줄 알고도 공무원 된 것 아니냐. 공무원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정년 보장에 은퇴 후 연금까지 나온다. 여름 6시, 겨울 5시 칼 퇴근이고 봉급은 적어도 다른 혜택이 많다. 그런데 파업까지 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저질스런 발언을 하고도 여전히 의원 노릇 할 수 있는 게, 그가 살았던 독일과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을, 독일서 공부하고 온 유의원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 국민들 살기에는 어쩐지 몰라도, 여당 국회의원 입 놀리기에는. (사실 대한민국에서 고소득을 올리면서, 가장 파업 많이 하는 게 국회의원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불법파업(?) 엄단을 주문하고,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징계와 처벌”의 의지를 다지고, 대한민국 행자부 장관은 “복직할 꿈도 꾸지 말라”고 협박을 가하고 있다. 유시민 정치 활동의 자양분이 된 독일의 사정을 얘기하자면, 얼마 전 독일의 슈뢰더 수상은 파업을 했다가 패배한 어느 노조를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비록 당신들은 패배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훌륭하게 싸웠다.” 바로 이것이 독일 팔아먹던 ‘소셜 리버럴’ 유 의원이, 그 동네 지지자들에게 꼭꼭 감춰놓고 혼자만 알고 있는 독일의 분위기다.
3. 시민의 마조히즘
언젠가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라디오에서 어디선가 파업을 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오자, 운전기사가 대뜸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파업이냐”며 육두문자를 섞어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다. “직장 없어 굶는 사람들도 있는데 배때기가 쳐 불렀지.” 내가 그 꼴을 보다가 하도 기가 막혀서, “택시 기사는 파업도 안 할 거냐?”고 물었다. 그제야 자기가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듯 말을 더듬는다. “아저씨가 파업하면, 저는 그때 옆에서 지금 아저씨가 하던 그 욕설을 퍼부어댈 겁니다. 직장 없어 굶는 사람들도 있는데 배때기가 쳐 불렀지.”
“배때기가 쳐 부른” 사람들은 파업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배때기가 고픈 붙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어떤가? 그러잖아도 대기업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생존하기도 힘든데, 무슨 얼어 죽을 노조며, 무슨 얼어 죽을 파업이냐고 한다. 그러면 배때기가 아예 등짝에 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아예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조를 만들어도 안 되고, 파업을 해서도 안 된단다. 그렇다면 도대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해도 되는 노동자의 예를 한 번 들어 보라.
문제는 노동자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다. 이것은 언론에 의해 부추겨진 측면도 있지만, 시민들 자신의 의식에도 책임이 있다. 소위 ‘시민’은 정치경제학적 계급이 다른가? 어차피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력 팔아먹고 사는 노동자 아닌가? 저들의 운명이 언제라도 자신의 운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대’를 표시하기는커녕 외려 감정 섞인 공격을 퍼붓는다. 남들의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공격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이다. 한 마디로 민중의 자학증상이다. “연대하라!” 그게 싫으면 톨레랑스를 가지고 최소한 중립을 지키라.
뱀발)
솔직히, 점점 낮아지는 기사의 질을 볼 때, 큰 신문사에서 굳이 비싼 돈 줘가며 기자들 고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큰 신문사, 경제도 어려운데 이 참에 경영혁명이 필요하다. 솔직히 기자들 봉급으로 지급되는 돈의 5분의 1만 가지고도, 독자에게 훨씬 질 좋은 기사를 제공할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반적 방법 있지 않은가. 지금 한국경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노하우. 그것을 신문사에도 도입하는 거다. 즉, 기자들도 전원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터넷에 널린 게 기자이고, 널린 게 칼럼니스트다. 박봉만 줘도 기꺼이 휴가 반납하고 초과 노동할 준비가 된 숨은 인재들이 도처에 쌔고 쌨다.
1. 언론의 사디즘
“경제도 어려운데 공무원까지 파업을?” 본색이야 늘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 상부 구조에서는 제법 개혁적인 척 하는 열린우리당도 하부 구조가 문제가 되면 한나라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인다. 정부는 탄압하고, 한나라당은 공조하고, 조중동은 응원하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이럴 때는 그 드높던 안티조선도 목소리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지금 공무원 노조를 향해 퍼부어대는 저 황당한 언론의 왜곡보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전공노는 싸늘한 국민 눈길도 못 느끼나?> (조선일보)
<전공노 지도부에 법의 엄정 보여줘야> (중앙일보)
<전공노 끝내 파업인가?> (동아일보)
<파업 공무원 엄단의지 귀추를 지켜본다> (문화일보)
<희생자 양산하며 혁명할 건가?> (국민일보)
<파업 전원 파면 약속 지켜야> (매일경제)
<법질서 확립할 마지막 기회다> (한국경제)
가관이다. 이 정도면 광란이다. 30년대 나치 집권하던 시절의 독일의 언론상황을 연상시킨다. 한 마디로 언론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공무원의 이해가 서로 엇갈리는 상황이다. 여기서 약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이해의 충돌에 관한 한 언론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저 사설들의 제목을 보라.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을 넘어서, 아예 공무원 노조에 합법적 폭력을 가하라고 대국민 선동을 하고 있다.
파업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자기들이 나서서 설치지 않아도 대통령 각하, 국무총리 각하, 장관 각하께서 단도리 하겠다고 벼르시는 중이다. 이거, 말리기는커녕 “조져라, 조져라” 응원을 하고 자빠졌다. 저 쓸 데 없는 공격성,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 공격성은 성적 에너지다. 저거, 성욕의 표현이다. 대한민국 사디스트 언론인들은 저 짓을 하면서, 헉헉, 성적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변태도 저런 변태들은 다시 없을 거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아주 개판이다. 지금 뭣들 하는 짓인가? 언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양자가 주장의 공정하게 제시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비판을 하려면 할 일이다. 도대체 공무원 노조에서 주장하는 것 중에서 뭐가 문제인지 차분히 지적하면 될 일이다. 반대를 하려면 할 일이다. 다만 언론에서는 비록 파업에는 반대해도, 민주시민이라면 마땅히 동료 시민들의 권리 표현에 톨레랑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얘기해야 한다. 국민들의 열화 같은 규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공권력을 향해서는 그 칼로 저 공무원들의 목을 치라고 성화를 부리는 언론의 태도는 한 마디로 완장 찬 나치 당원의 모습이다.
2. 정권의 정신분열
노무현 대통령은 언젠가 “악법을 깨기 위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고, 스스로 “그것은 파업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이 “원칙과 소신” 때문에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찍어주었을 것이다. 근데 정작 청와대에서 요즘 들려오는 소리는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우리 대통령 각하, “억지와 떼를 쓰는 노동계와 더 이상 타협은 없다”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라는 메시지를 보내셨단다. 그 노무현과 이 노무현은 같은 인물인가?
1988년에 지금 총리로 계신 이해찬씨는 당시 노무현 의원과 함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노동법을 일반법으로 제정하라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단다. 1988년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정작 1988년에는 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불가능해진 모양이다. 뉴스에서 본 이해찬 총리는 현상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참가자에게는 “징계와 처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 이해찬과 이 이해찬은 같은 사람인가?
행자부 장관은 “전교조처럼 복직될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아예 협박을 하고 있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따로 없다. 이렇게 감히 군사정권도 하지 못 했던 협박을 하는 게 참여정부의 현실이다.
유시민 의원의 비아냥을 들어 보자.
“누가 공무원 되라고 협박했나? 박봉인 줄 알고도 공무원 된 것 아니냐. 공무원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정년 보장에 은퇴 후 연금까지 나온다. 여름 6시, 겨울 5시 칼 퇴근이고 봉급은 적어도 다른 혜택이 많다. 그런데 파업까지 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저질스런 발언을 하고도 여전히 의원 노릇 할 수 있는 게, 그가 살았던 독일과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을, 독일서 공부하고 온 유의원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 국민들 살기에는 어쩐지 몰라도, 여당 국회의원 입 놀리기에는. (사실 대한민국에서 고소득을 올리면서, 가장 파업 많이 하는 게 국회의원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불법파업(?) 엄단을 주문하고,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징계와 처벌”의 의지를 다지고, 대한민국 행자부 장관은 “복직할 꿈도 꾸지 말라”고 협박을 가하고 있다. 유시민 정치 활동의 자양분이 된 독일의 사정을 얘기하자면, 얼마 전 독일의 슈뢰더 수상은 파업을 했다가 패배한 어느 노조를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비록 당신들은 패배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훌륭하게 싸웠다.” 바로 이것이 독일 팔아먹던 ‘소셜 리버럴’ 유 의원이, 그 동네 지지자들에게 꼭꼭 감춰놓고 혼자만 알고 있는 독일의 분위기다.
3. 시민의 마조히즘
언젠가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라디오에서 어디선가 파업을 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오자, 운전기사가 대뜸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파업이냐”며 육두문자를 섞어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다. “직장 없어 굶는 사람들도 있는데 배때기가 쳐 불렀지.” 내가 그 꼴을 보다가 하도 기가 막혀서, “택시 기사는 파업도 안 할 거냐?”고 물었다. 그제야 자기가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듯 말을 더듬는다. “아저씨가 파업하면, 저는 그때 옆에서 지금 아저씨가 하던 그 욕설을 퍼부어댈 겁니다. 직장 없어 굶는 사람들도 있는데 배때기가 쳐 불렀지.”
“배때기가 쳐 부른” 사람들은 파업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배때기가 고픈 붙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어떤가? 그러잖아도 대기업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생존하기도 힘든데, 무슨 얼어 죽을 노조며, 무슨 얼어 죽을 파업이냐고 한다. 그러면 배때기가 아예 등짝에 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아예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조를 만들어도 안 되고, 파업을 해서도 안 된단다. 그렇다면 도대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해도 되는 노동자의 예를 한 번 들어 보라.
문제는 노동자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다. 이것은 언론에 의해 부추겨진 측면도 있지만, 시민들 자신의 의식에도 책임이 있다. 소위 ‘시민’은 정치경제학적 계급이 다른가? 어차피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력 팔아먹고 사는 노동자 아닌가? 저들의 운명이 언제라도 자신의 운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대’를 표시하기는커녕 외려 감정 섞인 공격을 퍼붓는다. 남들의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공격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이다. 한 마디로 민중의 자학증상이다. “연대하라!” 그게 싫으면 톨레랑스를 가지고 최소한 중립을 지키라.
뱀발)
솔직히, 점점 낮아지는 기사의 질을 볼 때, 큰 신문사에서 굳이 비싼 돈 줘가며 기자들 고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큰 신문사, 경제도 어려운데 이 참에 경영혁명이 필요하다. 솔직히 기자들 봉급으로 지급되는 돈의 5분의 1만 가지고도, 독자에게 훨씬 질 좋은 기사를 제공할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반적 방법 있지 않은가. 지금 한국경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노하우. 그것을 신문사에도 도입하는 거다. 즉, 기자들도 전원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터넷에 널린 게 기자이고, 널린 게 칼럼니스트다. 박봉만 줘도 기꺼이 휴가 반납하고 초과 노동할 준비가 된 숨은 인재들이 도처에 쌔고 쌨다.
한발짝 발을 담그고 나니 진중권식의 글쓰기도 필요하지 않을까하고 나의 이전 생각을 물리는 일이 일어났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분노하기도 힘든 일이다.